2011. 3. 14. 19:03

볼링 훅 도전기


들어가는 글
나는 볼링을 좋아한다.
그리고 볼링을 잘 치고 싶다.
이왕이면 손에 아대를 끼는 사람보다 잘 치는 것이 목표이다.
아대를 끼고 하는 사람들은 왠지 본인의 힘이 딸려서 기계의 도움을 받는 것 같아
치트키 쓰는 사람같은 인상이 박혀있다. ㅡㅡ;
아대를 차는 사람들은 열이면 열 훅을 구사하는데,
나는 훅을 어떻게 치는지 모른다.
거터(일명 또랑창)에 빠질 듯이 움직이다가 한순간 휙 하고 방향을 틀어서 스트라이크를 만드는
멋진 궤적이야말로 남자의 로망!
이라는 미명 하에 훅에 도전하기로 야심차게 마음을 먹었다.
지금부터 써내려갈 글은 한 사내의 독학으로 훅에 도전하고 성공하기까지의 뻘짓이 담긴 영양가 없는 일지다.

2010.12.XX
훅을 구사하려면 공에 회전을 넣으면 되는가보다 싶어서 몇 번 시도해봤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래서 인터넷에 볼링에 대해서 검색해봤다.

볼링에 있어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훅을 구사하는 방법,
하나는 스트레이트로 꽃아넣는 방법.
뭐가 됐든 공을 다음과 같은 지점으로 보내야 한다.

위 그림과 같이 1번,2번 핀 사이로 보내던가 1번,3번핀 사이로 보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공이 굵은 선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볼링핀들이 화살표 방향으로 쓰러질 확률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스트라이크 치기 좋게 공을 보내려면
훅을 구사해서 공을 휘게 만들어서 저 코스로 보내던가,
일직선으로 쭉 굴려서 저 코스로 보내던가
둘 중에 하나를 하라는 소리인데...
훅은 몇 번이나 시도를 해봐도 안 됐으니
스트레이트로 굴려서 저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음 번에 볼링장 가면 한 번 시도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2010.12.XX
친구들과 볼링장에 갔다.
지난번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지식을 총동원하여
공을 1번과 3번 사이로 꽃아넣는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기존에는 한 가운데 서서 공을 일직선으로 보내는 식으로 볼링을 쳤었는데,
(이렇게 쳐도 스트라이크 잘 나오게 하는 방법도 인터넷에 있긴 있더라...)
1,3번 사이로 공을 넣으려면 아무래도 가장자리에 서서 공을 던져야

위 그림과 같이 제대로 스트라이크 구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두 게임이 끝나고 나서,
이 방법은 못해먹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을 계속 일직선으로 굴리는 것도 어려운데,
가장자리에서 똑같은 방향으로 공을 굴린다는건
공을 던지는 세기, 손의 방향, 어깨 등등 모든 조건이 일정해야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게 컴퓨터지 어디 사람인가.
중1 때 볼링 처음 쳤을 때 받았던 점수를 두 번 연속해서 받고 나서야(55점 언저리)
그냥 원래대로 치고 말자는 체념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래도 원래대로 치면 점수는 그나마 잘 나왔으니까.
나는 역시 훅같은건 안 되나보다...

2011.01.XX
지난번에 내가 훅 쳐본다고 깝죽댈 때 관심을 보였었던 친구가
인터넷에서 몇 가지 정보를 가져왔다.
훅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공에 회전을 걸어야 하는데,
회전을 위해서는 손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가 드르륵 돌아갔다.
예전에 훅을 넣는 법이라는 글에서
공을 던질 때 처음에 11시 방향으로 손가락이 움직이고
엄지손가락이 빠지면서 10시 방향으로 움직이고 어쩌고 하는 글이 있었는데
당최 뭔 소린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냥 그런갑다 하고 말았었는데,
머리 속에서 연산회로가 띠링띠링 움직이면서 내 멋대로 가정을 하나 만들었다.
어쨌든 공에 회전만 만들면 훅이 되겠구나!
그래서 다음번에는 공을 잡고 있다가 던질 때 손을 비틀어서 공에 회전을 주는 방식으로 볼링을 쳐보기로 정했다.

2011.01.XX
친구와 볼링장에 갔다.
오늘의 목표는 공에 회전을 넣는 것.
처음 공을 던져보고 바로 깨달았다.
공에 회전을 걸려면 손목이 뒤로 꺾이면 안 되는데
릴리즈를 위해 손을 뒤로 빼는 순간 손목이 꺾여버린다.
왜 사람들이 아대를 차는지 처음으로 이해가 된 순간이다. 유레카!
는 개뿔, 아대를 안 치면 훅을 칠 수 없는 것인가! 라는 거대한 좌절감에 젖어있다가
아대 없이 잘만 공을 휙휙 꺾어버리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났다.
내가 뭔가 잘못 하고 있나보다.

2011.01.XX
친구들과 볼링장에 갔다.
내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뒤에서 봐준 친구들이
공을 던질 때는 손바닥이 정면에서 180도로 앞을 향하면서 공이 앞으로 주루룩 굴러가도록 움직인 다음
공을 놓은 이후에 손이 꺾인다고 지적했다.
어쩐지 평소보다 공이 더 일직선으로 잘 나간다 했다... ㅡㅡ;;;
내 손이 삐꾸인건지 아대를 안 차서 그런건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볼링 잘 치는 회사 동기가
훅을 잘 치려면 볼링장에 나뒹구는 보통 공들 말고 회전이 잘 먹는 공을 따로 써야 한다고 하면서
볼링장 공으로 훅 배울 생각 하지 말라고 하던데,
정말 관둘까...

2011.01.XX
친구와 볼링장에 갔다.(계속 같은 친구랑 간다 '_')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최대한 굴려본 결과,
공을 천천히 던지면 손을 비틀어 던지는 것에 좀 더 비중을 둘 수 있고 또 공이 나가는 속도도 느려져서
회전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게 되어 공이 휘지 않을까 하는 가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이것에 대한 실험을 진행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원래 일직선으로 공을 던지면서 최대한 파괴력을 높이고자 막 뿌려댔던 버릇이
죽어도 안 고쳐진다... T_T
한 6~7번 던질 때 한 번 정도 손에서 힘을 뺄 수 있었는데,
이 때는 공을 관찰한 결과 아주 미세하게나마 회전하는 고무적인 모습이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아예 뻘짓을 한 건 아니라는 희망을 안겨준 순간이었다.

2011.02.XX
친구와 볼링장에 갔다.(또 같은 친구다... 그리고 얘도 나와 같이 훅에 도전한다 '_')
게임을 하면서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나는 공에 훅이 먹긴 하는데 꺾이는 수준이 미미함으로 인해서
공을 12시 방향으로 앞으로 굴리면 끝에 가서 조금 꺾이다 말고,
11시 방향으로 대각선으로 굴리면 끝에 가서 주룩 꺾여서 중앙 부분을 벗어나 버린다.
이래서야 스트레이트로 1,3번 핀에 꽂아넣는 걸 연습하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나 싶을 정도다.
그리고 다른 문제는 손에 조금만 힘이 들어가면
공을 앞으로 던져버리고 손에서 공을 놓은 후에 빈 손을 비틀어버린다.
십여년 이상을 파워볼링이랍시고 강하게 뿌리는걸 버릇으로 삼은지라 고치기가 너무 힘들다.
공이 거터에 떨어질 듯 하면서 휙 꺾이는 그림같은 투구는 머나먼 미래같다.

2011.02.XX
친구들과 집 앞 볼링장에 왔다.(기존에는 계속 수유리 볼링장)
공을 고르고 있는데 보통 공과 다른 모양의 공이 있다.
이게 회사 동기가 말했던 훅이 들어가는 공인가 싶어서 낼름 집어왔는데,
평소에는 5번 굴리면 한 번 들어갈까 말까 하던 훅이
두 번에 한 번 꼴로 꺾여 들어간다.
사람이 아무리 용을 쓰고 뻘짓을 다 해봐도 도구의 힘을 빌리는 것만 못하구나 ㅡㅡ;

2011.02.XX
집 앞 볼링장에 혼자 갔다.
훅을 위한 갈 곳 없는 열정! 은 개소리고 술에 취해서 객기 부리러 갔는데
가니까 새벽 2시에 볼링장이 꽉 차있다 '_'
조금 기다렸다가 레인 하나 잡고 주구장창 쳐댔다.
이제 공을 두 번 던지면 한 번은 훅을 먹일 수 있을 것 같다.

2011.02.XX
친구들과 볼링장에 갔다.(수유리)
그동안 또 혼자서 생각해 본 것이 하나 있어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공을 던질 때 손바닥이 정면을 바라보는 상태에서 손을 꺾는 것이 아니라
아예 90도로 틀어서(악수하듯이) 공을 던지고 손가락 끝으로 공을 잡아채 회전을 만드는 방법을 시도해보는 건데,
요새 확실히 볼링에 미쳤는지
계단 오르내릴 때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손으로 볼링공을 던지는 시늉을 하고 있다... ㅡㅡ
아무튼 자세는 이미 머리 속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던졌는데,
어라? 이렇게 던지니까 공이 평소보다 훨씬 가볍다.
그동안 11파운드, 12파운드 공으로 치면서 손가락에 맞는 구멍이 뚫린 공 찾느라 애먹었는데,
이제는 14파운드, 15파운드 공을 들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날 총 4게임을 쳤는데,
처음 두 게임은 공에 훅이 먹힐 것 같으면서 잘 안 먹혀서(이곳은 레인에 기름을 통으로 부어버린듯 미끌미끌하다)
세 게임부터는 좀 더 살살 던져서 최대한 회전이 먹도록 던졌더니
마지막 게임에는 그야말로 던지면 가운데로 꽃히도록 훅이 제대로 구사되었다.
드디어 나도 훅을 구사할 수 있구나!

2011.03.XX
아는 동생과 광화문에 있는 볼링장에 갔다.
이제 훅을 치기 위한 기본적인 능력은 습득했으니,
볼링장마다 틀린 레인 상태에 대한 적응훈련 차 안 가본 볼링장을 방문하는게 주요 목적이다.
그런데 훅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되니까,
웬만해서는 스페어 처리까지 마음먹은 대로 잘 된다.
스플릿 상황만 안 만들어지면 공의 회전을 가감하면 한두 핀 남은건 곧잘 처리가 가능해져서
훅을 시도한 후로 최고 점수를 찍어냈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볼링 좀 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쁜 마음이 든다.

2011.03.XX
친구들과 집 앞 볼링장에 갔다.
새벽 3시에 갔는데 여전히 줄 서서 기다려야 된다.
우리나라에 볼링 인구가 이렇게 많았나?
아무튼 우리 차례가 돼서, 왠지 훅이 잘 들어갈 것 같은 공을 하나 집고 게임을 했는데
확실히 공이 좋으니까 내가 봐도 그림같이 공이 꺾여 들어간다.
첫 게임을 기분 좋게 끝내고 나서 갑자기
며칠 전에는 일반 공으로도 잘 쳤는데 괜히 공에 의존했다가 실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어
보통 공으로 바꿔서 두 번째 게임을 쳤는데,
역시나 두 번째 게임에서는 공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이정도로 스핀을 넣으면 끝에서 끝으로 공이 꺾여줘야 될 것 같은데 꺾일 듯 꺾일 듯 안 꺾이는 야속한 공.
아무래도 아직 갈 길이 먼 듯 하다.
역시 사람은 자만하면 안 돼 '_'

일지를 마치며
나중에 찾아봤더니
손바닥을 정면과 90도 방향으로 만들어서 공을 던지는 방법은 기본적인 훅을 구사하는 방법이고
손바닥을 정면과 마주보게 했다가 던질 때 손을 틀어서 훅을 만드는 방법은 또 따로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뻘짓을 한건지 뭔지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지만
아무튼 훅은 던질 수 있으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조상의 지혜를 위로 삼아서 훅으로 가는 길에 대한 여정을 마무리 짓기로 한다.
만약 이 글을 보고 나도 훅을 구사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나올지 의문이지만,
행여 그러고 싶다면 잘 치는 사람에게서 배울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