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0. 12:00

보험에서의 '피보험이익'이라는 용어

이거 진짜 보험가입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인데...
사실 피보험이익이라는 용어는 생명보험회사에서는 별로 쓸 일이 없는 단어입니다. 손해보험회사에서 주로 쓰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생명보험 시장 규모가 손해보험 시장 규모의 10배 이상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그닥 알 필요도 없거니와 알 수 있는 기회도 없다고 봐야죠. 이건 잡설이고.

어느날 내가 사고를 당해서 피해를 보았는데, 그 피해를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이것을 보험을 가입해서 보상을 받을 수가 있게 됩니다. 보험을 가입함으로써 내가 이익을 보는데, 그 이익이 내가 사고를 당해서 나한테 떨어지는 셈이니까 수동태를 써서 이름이 '피보험이익'인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ㅎ)

피보험이익은 다르게 말해서 '보험 계약의 목적' 이라고도 부르는데(상법에서 저 용어를 사용합니다), 자동차보험은 교통사고가 나서 차를 수리하면 비용을 보상받으니까 차가 보험 계약의 목적이 되고, 화재보험은 집이 불타면 보험금을 타내는 거니까 집이 보험 계약의 목적이 됩니다. 이렇게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손해를 입게 될 염려가 있는 이익'을 보험에 가입하는 거고, 이게 피보험이익인 것입니다.

제가 피보험이익에 대해서 주절대는 이유는 이것이 보험회사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인데,

1. 보험자(보험회사)의 책임범위를 결정합니다.
사고가 났다고 해서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멋대로 줄 수 없는 노릇이고, 피해에 걸맞는 보험금을 산정하여 지불해야 됩니다. '이득금지의 원칙'이라는 것 때문에 보험자는 피보험자가 입은 손실 이상으로 보험금을 주면 안 되고, 따라서 보험회사가 피보험자에게 줄 수 있는 법률상 최대 보상금은 피보험이익의 시가(또는 처음에 보험자와 피보험자가 협의한 가액)로 정해집니다. 보상금의 가이드라인이 정해지는 거죠. 그 가이드라인이라는게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냐는건 나중의 문제지만...

2. 보험의 투기수단화 방지
위 내용대로 보험회사에서 피보험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최대 보험금은 피보험이익의 시가로 정해지는 관계로, 만약 피보험자가 보험회사에 피보험이익의 두 배, 세 배를 보상한도액으로 설정해서 보험을 가입했다고 하더라도 사고가 나면 보상은 시가로만 받게 됩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보험가입자들이 보험자에게 약간의 보험료를 더 지불하고 나중에 사고가 나면 로또 맞은 것 처럼 이득을 보려는 생각을 안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3. 도덕적 위험의 방지
피보험이익은 그 주인에게 속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고가 나면 피보험이익의 주인한테 보상을 해줘야 되지요. 만약에 어떤 건물의 주인이 아닌 옆동네 생판 모르는 사람이 건물에 대해서 보험수익자를 자기로 하는 엉뚱한 계약을 주인 몰래 체결한 다음에 방화를 내서 보험금을 타갈려는 수작을 벌일 수가 없게 만드는 역할을 피보험이익이 담당합니다.

4. 보험계약의 동일성 식별 기준
위에는 피보험이익을 보험 계약의 목적이라고도 부른다고 했지만, [피보험이익 = 보험 계약의 목적]이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이익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동일한 보험 계약의 목적을 두고서도 피보험이익이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노트북을 보험가입 하는데, 화재가 나서 노트북이 불탔을 경우에 내가 손해를 입는 이익에 대해서 보험에 가입하면 화재보험이 되고, 노트북이 도난을 당해서 내가 손해를 입는 이익에 대해서 보험에 가입하면 도난보험이 됩니다. 이렇게 보험회사에서 보험종목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중요한지 실감이나 나실까 모르겠지만 ㅡㅡ;) 피보험이익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첫번째는 적법성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불법인 마약을 들여와서 창고에 보관해두고 화재로 소실될까봐 화재보험을 가입한다고 했을 때, 사고가 나도 당연히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그 전에 가입 자체가 안 될 테지만요) 불법적인 물건이기 때문에 마약을 피보험이익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경제성입니다. 보험회사의 법률상 최대 보상한도액이 피보험이익의 시가라고 했는데, 탤런트 이민정이 싸인해준 휴지가 나에게는 천금같은 보물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민정을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코 푸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누구나 타당하게 재산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금전적으로 따지면 얼마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경제성을 갖추지 못하면 피보험이익이 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확정성입니다. 보험에 가입한 물건이 사고가 났는데 이 물건의 값어치를 평가할 수 없으면 보상이 제대로 안 되지요. 따라서 이 물건은 사고가 난 때와 곳의 시가로 얼마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누구니까 누구한테 보상을 해줘야 됩니다 하는 내역들이 확정이 되어야 보험 가입이 가능해집니다.

이상으로 피보험이익에 대해서 간단하게(라고 하지만 웬만한 책들도 이 정도 이상의 설명은 없음)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에는 보험이 지녀야 하는 몇 가지 원칙들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