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3. 19:27

한 아나운서의 안타까운 비극을 지켜보며...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랜만에 사고와 맞물린 시점에서 글을 쓰는데, 그러다보니 횡설수설해버릴 듯...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불타는 공격성은 시대가 변하면서 새롭게 생겨난 모습은 아니다.
과거에도 왕따는 존재했고(그걸 왕따 또는 이지메라고 부를 수 있는 단어가 생겨서 인지도를 높였을 뿐)
수많은 연예인들이 악성 팬레터에 시달려야 했으며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오히려 더욱 무시무시한 루머들이 떠돌곤 했었다.
(화폐속에서 살고 있는 김민지 어린이가 가상인물이라는걸 아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군중 속에 자신을 파묻을 수만 있으면면
사람들은 지킬박사에서 하이드로 변신하는 것 이상의 모습을 언제든지 보여준다.
하물며 이천년 전 저멀리 타국에서 예수님이 나서서 돌맞는걸 막아준 여인의 경우에도
군중 속에 묻혀서 마구잡이로 돌을 던져댈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모였지
참가번호 몇번 어디 사는 누굽니다 하고 한 명씩 나와서 돌 던지라고 하면 어땠을까.
물론 이 경우에도 돌 던지려고 수백명이 모여들고
던지고 난 후에 뒤탈이 없다는게 보장되면 얘기야 틀려지겠지만...

오늘 한 사람이 비극적인 인생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마감했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기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줌의 슬픔을 남기고,
수많은 대중들에게 티타임의 화제거리를 남겼다.
그리고 특정 밥벌레들에게는 찰나의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줄 카타르시스를 남겨주었다.
고 송지선 아나운서가 왜 이런 방법을 선택했는지는 굳이 추측하고 싶지 않다.
누가 잘못인지 따지는건 당사자들이 할 일이지,
전혀 관계없는 우리네 어중이떠중이들이 판단해줄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꼭 내가 나서서 가해자의 죄를 단죄하리라고 분연히 일어나는 또라이들이 있고
죽은 피해자한테 욕해대는(왜 욕을 할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병크의 완전체를 보여주는 찌질한 것들이 있다.

문제는 이것들은 자기네들의 역겨운 감정의 쓰레기를 뱉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한
계속해서 똑같은 병신짓을 반복한다는 것.
익명성이 존재하는 공간을 원천봉쇄하지 않는 한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다.
완전실명제를 해봐도 아마 소용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을 경우 사람은 충분히 잔인해질 수 있는 동물인지라.

근데 이걸 막자고 익명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을 봉쇄해버리자니
이런 공간이 주는 순기능이 너무 많다.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절대 성립하지 못한다.

사실 인터넷에서 멍멍 짖어대는 인간 이하의 것들에 대한 처리 문제는
마이클 샌달 교수를 불러와서 정의란 무엇인가 공개토론을 해봐도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것은
죽은자에게는 애도를,
산사람에게는 인과응보를 기다리는 것 뿐인데,(임태훈이 잘못했다는건 아니다. 사실관계를 모르기에)
미쳐 날뛰는 개티즌들과
이걸로 돈 좀 벌자는 개널리즘이 합쳐져서
이 사건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써놓고보니 결론이 안 나네. 그저 한숨 뿐.

PS. 오랜만에 글을 싸지르고 보니 왠지 단어선정을 중2병스럽게 해놓은 듯도 싶고... 참...